검색
한국어
  • English
  • 正體中文
  • 简体中文
  • Deutsch
  • Español
  • Français
  • Magyar
  • 日本語
  • 한국어
  • Монгол хэл
  • Âu Lạc
  • български
  • Bahasa Melayu
  • فارسی
  • Português
  • Română
  • Bahasa Indonesia
  • ไทย
  • العربية
  • Čeština
  • ਪੰਜਾਬੀ
  • Русский
  • తెలుగు లిపి
  • हिन्दी
  • Polski
  • Italiano
  • Wikang Tagalog
  •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
  • 기타
  • English
  • 正體中文
  • 简体中文
  • Deutsch
  • Español
  • Français
  • Magyar
  • 日本語
  • 한국어
  • Монгол хэл
  • Âu Lạc
  • български
  • Bahasa Melayu
  • فارسی
  • Português
  • Română
  • Bahasa Indonesia
  • ไทย
  • العربية
  • Čeština
  • ਪੰਜਾਬੀ
  • Русский
  • తెలుగు లిపి
  • हिन्दी
  • Polski
  • Italiano
  • Wikang Tagalog
  •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
  • 기타
제목
내용
다음 동영상
 

신을 알려면 우리가 신이 되어야 한다, 11부 중 4부

내용 요약
다운로드 Docx
더보기

4부에서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폭력의 뿌리를 밝히시며 갈등을 일으키는 이들이 왜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설명하십니다. 신의 깨달음을 통해 내면의 신성한 사랑을 일깨움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이 세상의 고통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이 존재함을 아는 것이나, 성경 읽는 것 또는 여기저기 조금씩 기도하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은 이걸로 충분치 않아요. 정말 신을 알고 싶어 해요. 신과 대화할 수 있고, 매일 매일의 문제마다 신의 조언을 듣고, 말 그대로 신과 더 가까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에게 작은 도움을 주려고 여기 왔어요.

전쟁이나 재난, 오해, 분노, 증오는 모두 신을 알지 못하는 좌절감에서 오는 겁니다.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악은 신을 알고자 하는 갈증에서 비롯합니다. 모순이고 역설적이지만 사실입니다. 필사적으로 구조를 청하죠. 그 외에 뭘 할지 모르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들은 폭력을 써야 해요. 여러분이 비명 지르듯이 말이죠.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처럼 보이고 이 몸을 입는다고 해도, 우리는 신의 자녀이며; 성스러운 영혼이니까요. 우리는 언제든 원할 때, 모든 것을 가졌던 천국에서 살았던 겁니다.

『너희는 신의 성전이며,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심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우리 안에 오직 신만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그 신이기 때문이죠. 우린 필요한 것을 위해 일해야 하고, 원하는 걸 갖지 못한 채, 그걸 요청해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망하고, 화가 나며,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 좌절감이 폭력을 낳고, 증오를 낳으며, 결국 전쟁을 낳습니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사실 사랑과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너무 필사적이라서, 그들의 존재 상태 안에 사랑과 지혜, 이해를 가져오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미 너무 아파서, 그가 의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감사하지도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 떨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이 더 낫지요. 신의 사랑을 친밀하고 더 실질적으로 찾도록 돌보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무력한 상황이나 깊은 절망감을 경험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신은 모두를 사랑하죠. 주 예수님은 그분께 직접 무슨 일을 했든 간에 우릴 모두 용서합니다. 그분은 적을 용서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어요. 『아버지,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니, 그들을 용서하소서』

주 예수님에 관한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난 항상 울고 싶어집니다. 그런 큰 사랑은 오직 신에게서 올 수 있지요. 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입니다. 우린 왜 이런 사랑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쓰지 않았을 뿐이에요. 우린 방법을 잊었어요. 우리는 사랑이 있지만, 주 예수만큼은 아닙니다. 그걸 다시 갖기 위해서 아직 노력할 수 있어요. 신은 우리 죄를 용서합니다. 주 예수님도 우릴 용서하며; 우릴 위해 죽었고,

우리는 항상 주님의 눈에 평등할 것입니다. 왜 신을 알아야 할까요? 왜 이 사랑을 써야 할까요? 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할까요? 그 이유를 누가 아나요? 좋아요, 여러분이 모르는 척하니, 내가 아는 척할게요. 나도 무척 수줍음이 많지만, 모두가 수줍어만 하다간 그냥 여기 앉아, 난 여러분을, 여러분은 날 바라만 보면, 두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가야 해요. 왜냐하면 이 사랑을 쓰지 않으면, 스스로 괴롭기 때문입니다. 또한 물론 때로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접촉하는 이에게, 우리 주위에, 때로 우리 국가에 고통을 줍니다. 가령 전쟁같이 잘못된 결정, 사랑 없는 결정을 한다면 말이죠. 우린 이 사랑을 신을 알기 위해서만 아니라, 우리가 신의 일부이며, 신과 하나란 것을 알기 위해서 써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고 했듯이요.

우리는 말만으로, 생각만으로, 기도하는 것만으로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해요. 우린 사실 신과 하나 되고 지상의 신이어야 해요. 우린 그 바다에 다시 어우러져, 사랑의 바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이 행성에서 신을 대표할 수 있어요. 신의 장엄한 품성과 신의 사랑 전부를 우리는 대표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랑과 기쁨, 행복을 주위 사람에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신을 안 뒤에, 우리 내면에 거하는 성령을 거의 육체적으로, 실제로 안 뒤에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째, 전처럼 계속 살지만, 『좋아, 이제 신을 알아, 신이 거기에 계셔, 문제없어』라고 확신하는 거죠. 그리고는 계속 우리 일을 합니다. 또한 우리는 매일 신을 계속 더 알 수 있고, 우리 안에 신의 존재를 점점 더 확신하는 겁니다. 또는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경험하면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선택은 더욱 고귀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우리 지식을 형제자매의 삶과 행복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가승과 수녀, 승려들이 신처럼 행동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은 거의 지상의 신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친절합니다. 사랑이 아주 많죠. 정말 무조건적입니다. 자기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바쳤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어요. 세상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현재 상황에서, 계속해서 익명의 성인이 되는 겁니다.

신을 앎으로써, 우린 조용히 생활 속 기독교인이 되고, 성인이 될 것입니다. 우린 또한 사람들을 조용히 축복하여, 아무도 그것을 모를 겁니다.

사진: 『하늘에서 땅까지,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을 위해』

사진 다운로드   

더보기
모든 에피소드 (4/11)
1
지혜의 말씀
2026-08-17
1912 조회수
2
지혜의 말씀
2026-08-18
1585 조회수
3
지혜의 말씀
2026-08-19
1549 조회수
4
지혜의 말씀
2026-08-20
1364 조회수
더보기
최신 영상
주목할 뉴스
2026-08-20
1420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6-08-20
1363 조회수
유명한 채식인
2026-08-20
688 조회수
스승과 제자 사이
2026-08-20
1604 조회수
주목할 뉴스
2026-08-19
1330 조회수
41:25

주목할 뉴스

838 조회수
주목할 뉴스
2026-08-19
838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6-08-19
1549 조회수
과학과 영성
2026-08-19
959 조회수
스승과 제자 사이
2026-08-19
2182 조회수
공유
공유하기
퍼가기
시작 시간
다운로드
모바일
모바일
아이폰
안드로이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GO
GO
QR코드를 스캔하세요 ,
또는 다운로드할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선택하세요
아이폰
안드로이드
Prompt
OK
다운로드